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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가

몇년 전, 열차에서의 기억

by garyston 2013. 6. 22.





여행의 설렘은 내 옆자리의 누군가를 기대하는 일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친구를 보러 서울로 간 버스 옆자리에 앉았던, 토끼 같은 누나 외에는 딱히 즐거웠던 기억은 없던 것 같다. 언젠가 찾아올 인연을 옆자리에서 만날 수 없다는 걸, 그런 일은 영화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라는 걸 그 동안 내 옆자리를 채워주신 많은 분들을 통해 깨달았을 뿐이다. 그저 차창 밖의 풍경이 조금 지겨워지면 시선이 닿는 곳의 사람들을 종종 관찰하는 정도랄까? 재미있어 보이는 관계의 사람들이라면,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선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며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기도 한다.

 

 꽤나 차가운 날씨였으니 분명 겨울이었을 것이다. 그 겨울 여행의 도착지까지 여정의 반도 지나지 못하고 잠에서 깨어 가져온 책을 읽을까 다시 잠을 청해볼까 멍하니 고민하고 있던 순간에 대각선 멀찍이 앉아 있던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단정한 앞머리 아래로 떨어진 수수한 콧대와 그 옆으로 자리잡은 선량한 눈망울

단아하다는 말을 쓰기에 적당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 속에 미처 시선을 거두지 못한 그녀의 오른쪽 뺨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책을 읽고 있지 않았고, 음악을 듣고 있지도 않았으며, 영상을 보고 있지도 않았다. 다만 멍한 시선으로 눈높이보다 조금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

의문의 또아리 속에서 초조해 질 때 즈음 옆자리에 잠들어 있는 노부인을 바라보며 다시 터진 그녀의 눈물, 그리고 가방에서 꺼내든 작은 책자에 적힌 글자

 

『암진단 체크리스트』

 

 사람은 태어나면 죽는다. 어린 시절엔 죽음에 맞서기가 두려웠던 시절이 있다. 한해 또 한해 이렇게 정해지지 않은 삶의 끝을 조금씩 늘려가고 있으니 갑자기 끝이 나더라도 조금은 덜 억울할 만큼 많은 걸 해왔기 때문에 지금은 그런 걱정을 조금씩 내려놓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내 상황에 대한 것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일이라면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

그녀 역시 그렇겠지?”

 그녀의 어머니가 몸을 뒤척이자 그녀는 읽고 있던 작은 책자를 무성의하게 접어 가방 안으로 넣었다. 그리고 곧 잠이 깬 그녀의 어머니와 시시콜콜한 옛날 이야기를 하며 웃고 있었다. 다정한 모녀다. 곁눈질로 시작해 그녀와 그녀의 옆자리에 앉은 노부인을 어머니로 규정짓고, 그녀의 표정과 눈물을 보고, 상념에 빠져있는 것도 1시간 정도였을까?

 

 당연하게도 나는 열차에서 내려 일상으로 돌아왔다.

 

 3년도 지난 지금 그 짧았던 기억이 기억하는 건, 누구나 겪을 수 밖에 없는 애달픔에 대한 기억이기 때문이다. 소중한 사람을 오래 두고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당연하지만, 소중하다는 마음은 그 사람 곁에 있을 시간을 무한하길 원하니 길게 느껴질 수가 없다.


누구나 아는 그리고 뻔한 이야긴데 누군가의 부고를 들을 때 즈음이면, 그 표정이 가끔 떠오른다. 그럴 때마다 아직도 눈물을 숨겨가며, 그녀가 어머니 곁에 있을 수 있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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