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보면 후회되는 일이 없게 그 때 그 상황에서 항상 노력하고 있지만, 잘한 기억보다는 아쉬운 기억들이 더 많이 떠오르는 건 긍정적이지 못한 내가 평생 느낄 기분인가.
자신이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있다면, 아직 자신에 대해서 잘 모르는 거 아닐까?
쉽게 나는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도 딱히 매력적이지는 않다. 부족함을 인정하고 아쉬운 기억을 잊지 않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정도만이라도 되어주길 바라는 것이지.
실수의 종류에 대한 일반적 분류 기준이 있을까? 그런 표준을 원인에 따라 분류한다면,
그 중 하나는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일어남.” 이 한 자리를 차지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피천득의 인연을 인상 깊게 읽었다면 누구나 기억할만한 문구가 하나 있다. 물론 매번 정확한 문구를 기억하지 못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서 또 다시 읽어보지만,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다음 번에도 똑같을 것이 분명하다. 대략 어떤 말인지는 알지만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이 문구 같은 얼굴의 사람이 있다. 이 문구와 비슷한 기억의 사람이 있다.
25 Rue Jean Lurçat, 2009.
인연이라는 것에 크게 의미를 두진 않지만, 내가 가려던 민박집에 자리가 없던 관계로 다른 민박집을 찾아 나선 고생스러운 길은 원하지 않았다. 다행히 고생 끝에 도착한 숙소는 괜찮은 편이었고, 즐거운 여행자들과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즐거운 일주일이 끝나는 마지막 저녁, 숙소매니저의 부탁으로 나처럼 숙소를 찾지 못해 헤매는 어린양을 돕기 위해서 편안한 복장으로 지하철 역 근처까지 나섰다. 외곽에 있는 탓에 저 멀리서도 뻔히 저 사람이란 걸 알아볼 수 있었다. 간단히 인사 후에 이어진 여행이나 파리, 프랑스에 대한 형식적인 대화를 나누며, 갈 때보다는 조금 더 빠르게 숙소에 도착했다. 들고 오르기엔 무거워 보이던 캐리어를 드는 호의를 보이고 있던 때, 그녀가 내게 물었다.
“저.. 요금은 선불인가요?”
이런 급작스런 상황을 이해하기 힘든 이유는, 자신이 지금 어떻게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평소에 하는 사람은 잘 없기 때문이겠지. 처음에는 이 사람이 나에게 왜 이런 말을 하나? 너무 편안하게 입고 픽업 나온 사람을 충분히 숙소 직원으로 오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후에,
“올라가셔서 매니저에게요.”
마주보고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내 당황한 표정은 보지 못했겠구나.. 라고 깨달은 건 해맑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란 목소리 덕분이었고,
늦은 시간이었지만 매니저는 따스하게 저녁을 거른 그녀를 위해 일단 돈을 받았을 것이고 그러고 나선 저녁식사도 간단히 챙겨줬겠지. 그렇게 누군가에게 숙소 직원이 되었다.
망원동 마포구, 2010.
“그러니까 잠깐 나와라. 그 때 너 민박집 직원으로 오해한 애도 지금 있다니까? 너 걔 기억난다는 이야기 했었잖아. 얘도 너 한번 보고 싶대.”
나는 복학생으로 의무와 사명을 다하기 위해 그녀를 볼 수 있는 기회보다 세 번째 과제에 충실하기를 선택했다. 군대를 가야 하는 국방의 의무보다 더 무겁게 느껴진 건 복학생의 의무와 사명이었다. 복학하면 다들 장학금 받는다고 하던데, 대부분이 복학생으로 채워지는 공대는 누가 장학금을 받지 못하는 걸까. 그녀와 장학금을 두고 선택한 것은 아니다. 그녀를 볼 수 있는 기회와 세 번째 과제 사이에서 과제를 선택했을 뿐. 그녀를 본다고 해서 운명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할 순 없었고, 내가 선택한 세 번째 과제 역시 시간을 들였지만 완성할 수는 없었다.
그 당시 절실했던 것들도, 지나고 보면 괜히 별게 아닌 게 되는 게 망각이고,
그렇게 깔끔하게 세탁해서 여기저기 기분 좋게 널어놓는 것이 내가 편해지기 위한 메커니즘 인가.
세 번째 과제와는 별개로 낮은 성적을 받았고, 재수강을 하지 않았음에도 지금의 회사에 입사하는 것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는 것은 그 세 번째 과제가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일까.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이제서야 분명히 그러했노라고 말해봐야 아무것도 변하는 것은 없지만, 간혹 그 선택을 후회한다.
그 사람과 걸었던 좁은 거리와 대화는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 사람이 나와 보냈던 시간이 내 과거 속에 분명히 존재한다.
허나, 내가 보고 싶었던 그 사람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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