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언니.

별 관심 없이 보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난 남자다

뜬금없이 내 성(性)에 대해서 밝히는 이유는 내게 언니가 있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니가 있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에콰도르의 리오밤바라는 대도시도, 소도시도 아닌 그저 적당한 크기의 도시의 시청, 또 그 산하에 있는 복지센터. 

코이카라는 한국의 무상원조기관에서 파견되어 2년간 컴퓨터 교육이라는 직무를 수행하도록 계약(?)을 맺고,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일해오고 있다. 기관에는 나 말고도 2명의 단원이 있다. 그래서 우리끼리는 당연히 한국어로 이야기 해서 현지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한다고 생각 할 수도 있지만, 직책이나, 이름같은 경우에는 나름의 은어를 만들어서 이야기하곤 한다.

 그래서 만들어진 은어 중 하나가 “언니”이다. 

▲ 언젠가 발표회에서 활짝 웃고 있는 모습

 언니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를 하자면, 

작지 않은 3층짜리 주택에 가족과 함께 살고 있고, 두 아들은 수도의 대학에 보냈고, 남편은 건축가(요새 경기가 좋지 않다고 한다), 기관에서 일하기 전까지는 학교 선생님(기관에서 일한지는 2년도 채 안되었다), 조금 약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코이카라는 단체를 잘 이용하고, 항상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대하지만 간혹 냉정한, 마지막으로.. 일부 기관직원들은 그녀를 꽤나 싫어한다 (우리 코워커가 특히;)

 우리 단원들에겐 그냥 언니가 되어버린 이 “언니”는 사실 우리 기관의 기관장이다. 

 나는 언니를 꽤나 좋아한다. 세 단원 모두 내가 언니에게 사랑을 많이 받는다는 점은 모두 인정한다. 

 그래서 그런지, 현장사업, 협력활동 등(이건 어짜피 기관이랑 함께하니까 당연한 걸 수도 있지만).. 그리고 자잘한 내 생활에 까지도 크고 작은 부분에서 많은 부분을 신경써준다. 이런 감사한 부분들 이외에도, 뭔가를 다른 이에게 먼저 베풀려고 하는 모습은 내가 언니를 좋아하는 이유다. 코이카 단원으로 생활해 본 사람들은 아시겠지만 같은 기관 동료들은 언젠가는 때때로, 어떤 물건을 달라고 하거나, 어딘가 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면 기념품을 달라고 하거나, 한국에 돌아갈 때 어떤 물건을 자신에게 주길 기대하고, 같이 모여서 놀 때, 돈을 더 내주기를 기대한다. 언니는 이런 모습이 없다. 반대로 자신의 집에 우리(단원들)를 초대하기도 하고, 여행에서 돌아오면 내게 선물을 주기도 한다. 특별히 내게 신경을 더 써준 부분도 있다. 사무실을 옮겼을 때, 내 사무실이 춥다며, 책상 자리 밑에 카페트를 깔아주고, 열차모양 연필꽂이도 선물 해 주었다. 휴가에서 돌아왔을 때에도, 내 선물은 꽤나 쓸만해보이는 가죽지갑이었다. (다른 기관 남자들은 열쇠고리를 받았다고 한다) 

 단순히 호의를 보인다고 해서, 쉽게 사람이 좋아지진 않는다. 

 내가 언니를 좋아하는 이유는, 몇가지가 더 있는데.. 

언젠가 언니가 부인과 수술 후에 몸이 많이 안좋았던 적이 있다. 그 때도 현장사업 때문에 이야기를 좀 나누었는데, 평소보다 방긋 웃고 있길래 몸이 많이 좋아진 것이냐고 물어보았었다. 언니는 아플 때 찡그리면 안된다고, 아파도 항상 웃는 얼굴로 사람을 맞이하고 싶다고 말했었다. 나 역시도, 내가 아프고 약한 모습을 숨기길 좋아한다. 그게  강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기관의 한 직원은 근교에 엄청난 별장을 소유하고 있을 정도로 부자이고, 가끔 기관 행사를 그 별장을 빌려 진행하기도 한다. 그런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나온 이야기인데.. 나 역시 가난한 봉사활동가라고 이야기를 하니 언니는 웃으면서 종이는 한낱 종이일 뿐이다. 가족끼리의 애정, 일의 행복함 등이 훨씬 중요한 것이고, 그런 것들이 자신을 행복할 수 있게 만든다고 말했다.

언니의 남편과도 초대받은 식사자리에서 꽤나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남편은 무신론자, 현정부를 지지 하는 사람인데, 언니는 천주교, 현정부를 반대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가족은 화목하고, 서로에 대해서 존중하고 지낸다.

이번 여름 휴가가 끝나고, 누군가에게 기념품을 준 사람은 오직 언니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내게 기념품을 사오라고 말하는 사람만 많을 뿐, 기념품을 먼저 주는 사람은 언니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꼼꼼하고,  시간 약속을 잘 지킨다. (한국의 꼼꼼함과 칼같은 시간약속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어린시절엔 한 인기 했을 것 같은 외모는 덤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기대치가 높아지는 성향을 가진지라 걱정이 되기도 한다. 다른 현지인들은 뭔 짓을 해도, 그냥 원래 그런거지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언니에게 실망하는 일이 생긴다면, 에콰도르에 대해 큰 실망을 할 것 같다.

언니는 내가 좋아하는 에콰도르, 그 모습의 큰 부분이니까.